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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별에 대한 생각과 비비안

캠브리지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나는 친구들에게 그림을 선물했다. 이별하는 일이 이렇게 많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건 바보 같았다. 비 오는 날에 한없이 슬퍼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앉는 마음은 어떻게 바꿀 길이 없었다. 나는 내가 도시에 이별을 건네는 날까지도 그랬다. 

 

친구들은 가벼운 발걸음과 뜨거운 포옹 그리고 웃음으로 이별을 맞이하는 것만 같은데, 왜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어려울까?

 

어쩌면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들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현재가 빛바랜 추억이 되고 '언제가 어디에서든 만나자'라는 말이 허공에서 사라질까 봐 두려워 그들의 지금의 모습을 연필로 기록해두고 그들이 나를 잊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노력했다. 미련스러운 행위일지라도 나는 이 과정들을 진심으로 즐겨했다.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들과의 추억을 생각했고 어떤 모습에서 그들이 가장 빛났었는지를 생각하니 내 마음도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내 선물을 받은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너무나 즐거웠다. 디자이너라고 하지만 한 번도 그림을 보여준 적이 없으니 한편으로는 그림솜씨를 뽐내는 것이기도 하기에 더 뿌듯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내 그림들과 친구들. 애정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조금씩 주었던 내 마음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는 기분이다. '더 이상 남은 게 없어..'라고 생각하다가도 또 금방 누군가 좋아져 버린다. 나는 이기적이고 꽤 배타적인 사람이라 진심으로 누군가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는데도 여전히 찾아오는 이별에 자연스럽지 못하다. 어떻게 사람들은 쿨할 수 있을까? 온 마음을 다해 주변인들을 사랑하는 그런 낭만적인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나른한 오후에 배부르게 먹고 엄마와 소파에 늘어져 차를 마시는 아주 행복한 순간에 엄마가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보고 싶다'라고. 엄마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그리곤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들을 이야기로 나누며 눈물로 웃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삶은 행복과 그리움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행복한 순간들은 그리움이 되어가고 그리운 순간을 추억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고. 그날 돌아가신 할머니와 멀어진 친구들을 추억하던 행복한 순간에 나는 진정 그들에게 이별을 고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주 슬프게.

 

 

 

 

 

 

Vivianne


 

 

비비안은 짙은 갈색의 아름다운 곱슬머리를 가진 친구다.

 

 

유난히 곱실거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콤플렉스라고 말하던 그녀는 매일 같이 머리끈으로 머리를 옭아맸다. 언니가 가진 생머리를 부러워했고 언니의 명랑한 성격마저 부러워하던 소심하고 조심스러워하는 아이. 그런 모습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워했지만 그녀를 알아갈수록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을 좋아하는 빛나는 눈동자를 알아챘고, 평범한 옷을 좋아하지만 특이한 액세서리들로 멋을 낼 줄 아는 반짝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품성이 곧아 주변 사람은 물론 자신까지도 올바르게 돌보던 그녀와 함께한 시간에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취리히 변두리의 숲에 둘러싸인 주택에 살며 여름이면 남프랑스의 할아버지 댁에서 휴가를 보내왔다는 그녀의 일생은 나와는 너무나 달라 흥미로웠다.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런 건가 보다. 나만이 중심이던 우주 속에서 새로운 우주를 만난다는 것.

 

 

작별 인사를 하던 날 나는 그녀가 머리를 풀고 나를 만났던 하루를 떠올리며 그린 그녀의 초상화를 선물했다. 그날은 우리 둘이 꼭 가보고 싶었던 레스토랑에서 송어와 야채를 볶은 음식을 저녁으로 먹었고 갈림길에서 긴 포옹을 하고 인사했다.